눈부신 햇살이 쏟아지던 5월의 어느 날, 서울 마포구의 한 청년 문화 공간에서 흥미로운 토론회가 열렸습니다. 바로 다가오는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을 되짚어 보고, 앞으로 나아갈 방향을 모색하는 자리였죠. ‘독서생태계 정책 제안과 서울국제도서전 공공성 회복을 위한 토론회’라는 다소 긴 이름에서 알 수 있듯, 이번 행사는 단순한 의견 교환의 장을 넘어, 한국 출판계의 미래를 위한 진지한 고민의 흔적을 보여주었습니다. 특히, 주식회사 체제로의 전환을 둘러싼 논쟁은, 서울도서전의 정체성을 넘어, 우리나라 독서 문화 전반에 대한 깊이 있는 성찰을 요구하고 있었습니다.
토론의 핵심에는 ‘공공성’이라는 단어가 자리하고 있었습니다. 현재 서울국제도서전은 대한출판문화협회(이하 출협)가 주식회사 형태로 운영하고 있습니다. 그런데, 이 과정에서 공공성 확보에 대한 우려의 목소리가 끊이지 않고 있는 것이죠. 정부 지원이 줄어들면서, 자율성을 확보하기 위해 선택한 방식이 오히려 공공성을 해칠 수 있다는 아이러니한 상황입니다. 하장호 문화연대 문화정책위원장의 날카로운 지적처럼, 공공성과 자율성은 서로 대립하는 개념이 아니라, 건강한 독서 문화 생태계를 이루기 위한 하나의 쌍입니다. 즉, 공공성을 잃은 자율성은 모래 위에 지은 성과 같아, 쉽게 무너질 수 있다는 뜻이겠죠.
오빛나리 작가노조 준비위원장의 발언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구체적으로 보여줍니다. 자본 규모에 따라 ‘소유’와 ‘의사 결정권’이 좌우되는 주식회사 체제는, 서울도서전의 운영 방향을 ‘자본 중심’으로 재편하려는 시도로 해석될 수 있다는 것입니다. 이는 소규모 출판사, 독립 서점, 신인 작가 등 독서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목소리를 외면하고, ‘돈’의 논리에 따라 움직이게 만들 수 있다는 점에서 심각한 문제로 지적되었습니다. 특히, 특정 출판인과 서점이 주식회사의 지분 70%를 보유하게 된 상황은, 이러한 우려를 더욱 증폭시키는 요인이 되었습니다.
이러한 문제 의식에 대한 해결책으로 제시된 것은, 독서 생태계 구성원들의 ‘연대’와 ‘참여’였습니다. 토론회에 참석한 발제자들과 토론자들은 서울도서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해 다양한 주체들이 참여할 수 있는 통로 마련을 시급하다고 강조했습니다. 허건 책읽는사회문화재단 간사는 서울국제도서전이 단순한 산업 박람회가 아닌, 책의 가치를 재조명하고 독서 문화를 사회적으로 확산시킬 수 있는 계기가 되어야 한다고 역설했습니다. 이를 위해 출판뿐만 아니라 작가, 서점, 도서관, 교육 및 언론 기관, 정부, 독자, 시민단체 등 독서 생태계 전반이 참여하는 협의체의 부활을 제안한 것이죠. 박성경 한국출판인회의 부회장은 출협, 작가, 독자, 출판사, 서점 등의 대표가 참여하는 공적 논의 테이블을 구성하여 운영 방식, 지분 구조, 법인 형태를 전면 재검토할 수 있는 논의 구조를 마련해야 한다고 주장했습니다. 또한 운영 주체의 이사회 및 자문기구에 독서생태계 대표 참여를 의무화하고, 정기적인 공청회 및 정보 공개를 제도화해야 한다고 강조했습니다.
흥미로운 점은, 이러한 문제 제기에 대해 출협 측의 공식적인 입장을 들을 수 없었다는 것입니다. 윤철호 출협 회장은 토론회에 참석하지 않은 이유로 ‘할 수 있는 말이 제한적일 것이라 판단’했다는 점을 들었습니다. 하지만, 이 자리에서 제안된 내용들을 반영할 수 있는 방안을 찾아보겠다는 의지를 내비치기도 했습니다. 이는 출판계 내부에서도 공공성 확보에 대한 고민이 깊어지고 있다는 방증일 것입니다. 물론, 출협의 입장이 무엇이든, 서울도서전의 성공적인 개최와 발전을 위해서는 독서 생태계 구성원들의 적극적인 참여와 소통이 필수적입니다. 그들의 목소리를 경청하고, 함께 미래를 만들어가는 노력이 필요하다는 것이죠.
한편, 서울국제도서전은 올해 대만을 주빈으로 초청하여 역대 최대 규모로 개최될 예정입니다. 535개 출판사가 참여하는 이 행사에서는, ‘믿을 구석’이라는 주제 아래 다양한 프로그램과 전시가 펼쳐질 것입니다. 특히, 전자책 플랫폼 북이오와의 협력을 통해, 관람객들에게 25시간 동안 무료로 전자책을 열람할 수 있는 기회를 제공한다는 점이 눈에 띕니다. 이는 도서전의 경험을 온라인으로 확장하여, 더 많은 독자들이 책을 접하고, 출판 시장에 활력을 불어넣는 데 기여할 수 있을 것입니다. 하지만, 이러한 긍정적인 측면에도 불구하고, 서울국제도서전의 진정한 가치는 ‘규모’가 아닌, ‘공공성’에 달려있다는 점을 잊어서는 안 될 것입니다. 단순히 많은 책을 전시하고 판매하는 것을 넘어, 책을 통해 사람과 사람을 연결하고, 독서 문화를 사회 전반으로 확산시키는 역할을 해야 합니다.
서울국제도서전은 단순히 책을 사고파는 상업적인 공간을 넘어, 책을 사랑하는 사람들이 모여 서로의 생각을 나누고, 새로운 가치를 창출하는 공간이 되어야 합니다. 이를 위해서는 출판계, 작가, 서점, 독자 등 다양한 주체들이 끊임없이 소통하고 협력해야 합니다. 주식회사 체제, 지분 구조, 운영 방식 등, 여러 가지 해결해야 할 과제들이 남아있지만, 독서 생태계의 미래를 위한 긍정적인 변화를 기대해 봅니다. 끊임없이 질문하고, 함께 답을 찾아가는 과정 속에서, 서울국제도서전은 더욱 의미있는 행사로 거듭날 수 있을 것입니다. 그리고, 그 과정에서 우리는 책을 통해 더 풍요로운 삶을 만들어갈 수 있을 것입니다.
─ 서울국제도서전의 공공성 확보를 위한 다양한 논의와 노력이 진행 중이다.
─ 독서 생태계의 다양한 구성원들의 참여와 연대가 무엇보다 중요하다.
─ 서울국제도서전은 책을 매개로, 더 나은 미래를 만들어가는 공간이 되어야 한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