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이들이라면 ‘은경’, ‘은정’, ‘현주’, ‘지현’과 같은 이름을 가진 누이, 언니, 친구, 그리고 짝꿍을 적어도 한 명쯤은 떠올릴 것입니다. 그 시절, 새 학기 초 선생님은 같은 이름을 가진 아이들을 구분하기 위해 ‘큰 은경이’, ‘작은 은경이’, ‘은정A’, ‘은정B’, ‘현주1, 2, 3’과 같은 호칭을 사용하곤 했죠. 존재론적 혼란을 겪는 아이들의 모습은 그 시절의 보편적인 풍경이었습니다.
선생님의 이런 ‘분류’에 아이들은 각기 다른 반응을 보였습니다. ‘은(銀)’에 ‘공경할 경(敬)’을 쓰는 ‘큰 은경이’는 자신의 이름이 ‘숨길 은(隱)’에 ‘거울 경(鏡)’을 쓰는 ‘작은 은경이’와 엄연히 다르다고 항변했고, 돌아가신 할아버지의 작명 철학을 고수하셨던 아버지 때문에 ‘은정B’라는 이름을 갖게 된 아이는 매년 이름 때문에 겪는 고충을 토로했습니다. ‘지현A’와 ‘현주3’은 성인이 되면 반드시 개명하리라 다짐했지만, 90년대 학창 시절을 보낸 우리는 매년 초등학교, 중학교, 고등학교 졸업 시즌에 ‘흔한 이름’ 때문에 겪는 고충을 담은 뉴스 기사를 접해야 했습니다.
정은경. 그녀의 이름은 ‘은(銀)’에 ‘공경할 경(敬)’을 씁니다.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인 그녀의 이름은 널리 쓰이는 한자 조합처럼 보편적입니다. 그리고 그녀의 행정 역시, 질병관리청장 시절부터 이 ‘보편타당함’과 상식에 기반해 왔습니다.
소설가 김훈은 코로나19 팬데믹 당시 정은경 질병관리청장을 두고 “사람들이 알아들을 수 있는 말을, 알아들을 수 있게 말한다”라고 평가하며, “지금 한국 사회에서 이런 말하기는 매우 희귀한 미덕”이라고 칭찬했습니다. 이는 말을 어렵게 만들어 ‘홍보 전략’으로 삼고, 심지어 그것으로 돈을 버는 현실에 대한 날카로운 비판이었음과 동시에, 회색빛 머리에 노란색 작업복을 입고 차분한 어조로 무너진 방역망을 추스르던 정은경 청장의 보편성과 사실에 입각한 행보에 대한 찬사였습니다.
정은경 청장의 행정은 현장의 목소리를 반영해 국민들이 이해하기 쉬웠고, 당파성에 휩쓸리지 않았으며, 과학적 근거를 바탕으로 했습니다. 그래서 보편타당했습니다. 그 시절, 방역은 우리 일상을 바꿔야만 하는 과정이었습니다. 정은경 청장은 ‘우리의 일상에 과학과 방역이 스며들지 않고서는 코로나19를 예방할 특별한 방법은 없다’고 말했고, 우리는 그 말에 공감하며, ‘정은경 청장이 하라’는 대로 따랐습니다. 그녀의 보편타당함은 굳이 설명을 덧붙이지 않아도, 때로는 귀찮고 번거로운 일들을 기꺼이 따라 하게 만드는 힘을 지녔습니다.
청장 시절, 정은경의 보편타당함은 과학적인 방역에서 비롯되었습니다. 하지만 장관으로서 그녀에게 요구되는 보편타당함은 조금 다른 차원일 것입니다. 장관에게는 바이러스처럼 물리쳐야 할 ‘적’이 존재하지 않습니다. 대신, 서로 다른 이해관계와 소신을 가진 다양한 사람들이 존재할 뿐입니다.
최근, 정은경 보건복지부 장관 후보자의 남편이 손 소독제 원료 기업 주식으로 배당 소득을 올렸다는 의혹이 제기되었습니다. 정 후보자는 질병관리청장으로 코로나19 대응을 책임졌고, 남편이 ‘코로나 수혜주’를 보유했다는 사실은 논란의 불씨가 되었습니다. 물론, 정 후보자는 이익을 실현한 적이 없다고 밝혔지만, 대중의 시선은 싸늘합니다. 공교롭게도, 그녀가 질병관리본부장이었던 2017년에는 남편의 주식 보유와 관련해 직무 관련성 심사를 받았고, ‘관련성 없음’으로 결론 났습니다. 그러나 질병관리청장이었던 2021년에는 관련 심사를 받지 않아, ‘직무 관련성’ 여부를 제대로 따져보지 않았다는 비판이 제기되었습니다. 정은경 후보자는 이에 대해 ‘창해에탄올 주식이 코로나 관련주라는 것을 인지하지 못했다’고 해명했습니다.
윤호중 행정안전부 장관 후보자는 ‘생명안전기본법 등 법제를 정비해 국민 안전권을 구현하고, 재난안전산업과 인력을 육성하겠다’고 밝혔습니다. 재난과 안전에 대한 중요성이 더욱 커지고 있는 시점에서, 그의 포부는 많은 기대를 모으고 있습니다.
다양한 이해관계가 얽힌 복잡한 세상에서, 정은경 장관은 전문가의 목소리에 귀 기울이며 균형점을 찾아나가야 합니다. 그녀의 ‘보편타당함’은 의료 정상화의 길을 열어주는 데 기여할 것입니다. 18일 열린 인사청문회는, 그녀가 앞으로 어떤 리더십을 보여줄지 가늠하는 중요한 시험대가 될 것입니다. 과거 질병관리청장으로서 보여주었던 ‘보편타당함’이, 이제는 보건복지부 장관으로서 어떻게 발휘될지, 많은 이들이 주목하고 있습니다.
─ 정은경 장관에게는 과학적 근거와 상식을 바탕으로 한 ‘보편타당함’이 요구된다.
─ 남편의 주식 배당 의혹은, 공정성과 투명성이라는 과제를 안겨주었다.
─ 의료 정상화를 위해, 다양한 이해관계를 조율하는 균형 감각이 중요하다.