2025년 7월 22일, 전 세계 헤비메탈 팬들의 가슴에 깊은 슬픔을 안기는 소식이 전해졌습니다. ‘헤비메탈 제왕’ 오지 오스본이 향년 76세로 세상을 떠났다는 비보였죠. 파킨슨병으로 투병 생활을 해온 그는, 마지막까지 음악에 대한 열정을 놓지 않았습니다. 그의 부재는 단순한 한 뮤지션의 죽음을 넘어, 헤비메탈이라는 장르의 역사, 그리고 시대를 관통하는 반항 정신의 상징을 잃었다는 의미로 다가옵니다.
오지 오스본은 1948년 영국 버밍엄에서 태어나, 1969년 블랙 사바스(Black Sabbath)의 창단 멤버로 음악 인생을 시작했습니다. 블랙 사바스는 당시 주류였던 히피 문화에 반기를 들며, 어둡고 묵직한 사운드로 헤비메탈이라는 새로운 장르를 개척했습니다. 밴드의 데뷔 앨범은 헤비메탈의 ‘빅뱅’에 비유될 정도로, 그 파괴력과 영향력은 실로 엄청났죠. 그들의 음악은 롤링스톤 독자들이 선정한 ‘모든 시대의 최고 헤비메탈 앨범’ 10위 안에 두 앨범이나 이름을 올릴 정도로, 시대를 초월한 명반으로 평가받고 있습니다.
블랙 사바스는 오지 오스본의 솔로 활동 이후에도, 2005년과 2006년 각각 영국과 미국의 ‘음악 명예의 전당’에 헌액되며 그들의 업적을 인정받았습니다. 2014년에는 서울에서 내한 공연을 펼치며 한국 팬들에게도 잊지 못할 감동을 선사했죠. 오지 오스본은 블랙 사바스 시절의 잦은 지각과 이해할 수 없는 행동으로 밴드에서 해고되었지만, 이 사건은 아이러니하게도 그의 솔로 아티스트로서의 찬란한 성공을 예고하는 신호탄이 되었습니다.
1979년 블랙 사바스에서 해고된 오지 오스본은 이듬해 솔로 아티스트로 화려하게 부활했습니다. ‘크레이지 트레인’, ‘굿바이 투 로맨스’, ‘플라잉 하이 어게인’, ‘유 켄트 킬 로큰롤’ 등 그의 솔로 앨범들은 헤비메탈 팬들의 뇌리에 깊이 각인된 명곡들을 쏟아냈습니다. 그의 데뷔 앨범 ‘블리저드 오브 오즈’는 ‘미스터 크로울리’를 포함, 13장의 스튜디오 앨범과 5장의 라이브 앨범을 통해 그의 음악적 역량을 여실히 보여주었습니다. 그의 솔로 활동은 블랙 사바스 시절과는 또 다른, 자유로운 영혼과 거침없는 반항 정신을 드러내는 무대였습니다.
오지 오스본은 음악 외에도 다양한 분야에서 대중의 사랑을 받았습니다. 특히 미국 케이블 채널 MTV를 통해 방영된 가족 리얼리티쇼 ‘오스본 가족’은 그의 기괴하면서도 유쾌한 일상을 보여주며, 그의 인간적인 매력을 널리 알리는 계기가 되었습니다. 그는 무대 위에서는 거칠고 강렬한 카리스마를, 일상에서는 엉뚱하고 친근한 모습을 보여주며, 팬들에게 더욱 깊은 공감과 유대감을 선사했습니다. 2024년에는 솔로 가수로서 ‘로큰롤 명예의 전당’에 입성하며, 그의 음악적 업적을 다시 한번 인정받았습니다.
2019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은 오지 오스본은, 최근 증상이 악화되면서 스스로 걷는 것조차 힘들어졌습니다. 하지만 그는 2024년 4월, 영국 버밍엄 빌라파크에서 열린 고별 공연에서 20년 만에 블랙 사바스 원년 멤버들과 함께 무대에 올라, 팬들에게 마지막 인사를 건넸습니다. 무대 중앙에 마련된 검은색 왕좌에 앉아 노래하는 그의 모습은, 그의 투병의 고통과 음악에 대한 뜨거운 열정을 동시에 보여주는, 잊을 수 없는 장면으로 기억될 것입니다.
오지 오스본은 2019년 파킨슨병 진단을 받았지만, 2024년 고별 공연에서 “오늘은 공연으로서는 작별 인사”라며 “이보다 더 멋지게 떠날 수는 없을 것”이라고 말했습니다. 그의 마지막 무대는, 그의 음악 인생을 가장 아름답게 마무리하는, 찬란한 피날레였습니다. 그는 떠났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아, 끊임없이 반항하고, 자유를 갈망하는 영혼들에게 위로와 용기를 선사할 것입니다.
─ 오지 오스본은 헤비메탈의 선구자이자, 시대를 대표하는 아이콘이었다.
─ 그의 음악은 반항 정신과 자유를 노래하며, 많은 이들에게 영감을 주었다.
─ 그의 죽음은 슬프지만, 그의 음악은 영원히 우리 곁에 남을 것이다.